런던의 차가운 저녁 식탁
2026년 2월의 런던, 낡은 빅토리아 양식의 연립주택 2층.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이 사라(Sarah)의 얇은 카디건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가스 계량기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 난방을 켜면, 내일 아침 올리버(Oliver)의 시리얼을 살 수 없어.' 잔인한 선택지였지만, 그녀는 주저 없이 담요를 두 개 더 꺼내는 쪽을 택했다.
"엄마, 나 배고파요."
8살 올리버가 식탁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사라는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빈 냉장고 안에는 유통기한이 임박해 할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식빵 반 봉지와 잼, 그리고 우유 조금이 전부였다. 그녀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식빵 두 조각을 토스트기에 넣었다.
"오늘 저녁은 특별히 엄마랑 '캠핑 놀이' 하면서 먹을까? 이불 속에 쏙 들어가서 먹는 거야."
사라는 아이가 추위를 느끼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사실 그녀는 점심을 걸렀다. 병원 청소 일을 하는 그녀의 월급은 지난 3년 동안 거의 오르지 않았지만, 월세와 전기세는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마트의 물가는 매주 앞자리가 바뀌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주말에 가끔 즐기던 피쉬 앤 칩스는 이제 사치품이 되어버렸다.
올리버가 잼 바른 빵을 허겁지겁 먹는 동안, 사라는 자신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감추려 일부러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는 안 먹어?"
"엄마는 일터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것 같아. 올리버가 다 먹어줘야 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사라는 아이가 학교 급식마저 부실해져 집에 돌아오면 항상 배고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학교 급식 예산이 삭감되면서 양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사라는 잠든 올리버의 등을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울었다. 대영제국이라 불렸던,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는 이 나라에서 내 아이에게 따뜻한 밥 한 끼와 온기를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치게 아팠다. 뉴스에서는 국왕의 화려한 행차와 정치인들의 공방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사라의 집은 춥고, 어둡고, 배고팠다. 그녀의 주머니 속에는 내일 푸드뱅크(무료 급식소)에 가기 위해 적어둔 쪽지만이 구겨진 채 들어있었다.
💡 '생활비 위기'의 구조적 개혁과 사회적 안전망 재건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동 빈곤과 결식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나태함이나 일시적인 경제 불황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생활비 위기(Cost of Living Crisis)'라고 불리는 구조적인 재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각적인 접근이 시급합니다.
보편적 무상 급식의 확대: 현재 소득 기준으로 선별 지원되는 무료 급식 대상을 대폭 확대하여, 낙인효과 없이 모든 아이가 최소한 학교에서는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국가 예산을 최우선으로 배정해야 합니다.
에너지 요금 상한제 및 긴급 지원: 가정의 난방비 부담이 식비 지출을 줄이는 주원인인 만큼, 에너지 기업의 초과 이익을 환수(횡재세)하여 저소득층의 에너지 바우처와 식비 지원에 투입해야 합니다.
실질 임금 상승과 물가 안정: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임금 구조를 개선하고, 브렉시트 이후 폭등한 식료품 수입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무역 장벽 완화 및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합니다.
결국, 아이들이 굶는 문제는 자선 단체의 푸드뱅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식량 안보'와 '아동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여 시스템을 뜯어고쳐야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그늘, 왜 이렇게 되었나?
소설 속 사라와 올리버의 이야기는 현재 영국 하위 20% 계층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현실입니다. 선진국인 영국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구조적 원인을 상세히 분석해 드립니다.
1. 브렉시트(Brexit)의 청구서 📉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면서 발생한 경제적 타격이 서민들의 식탁을 직격했습니다.
수입 물가 폭등: 영국은 식료품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브렉시트 이후 통관 절차가 복잡해지고 관세 장벽이 생기면서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인력난: 농장과 물류 현장에서 일하던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이 빠져나가면서 인건비가 상승했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 물가 부담으로 이어졌습니다.
2. 살인적인 에너지 비용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올랐지만, 영국은 그 타격이 유독 컸습니다.
난방 vs 식사 (Heat or Eat): 에너지 요금이 폭등하자 저소득층 가정은 난방을 켜면 밥을 굶어야 하고, 밥을 먹으려면 추위에 떨며 지내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습니다. 이를 'Heat or Eat' 딜레마라고 부릅니다.
3. 사회 안전망의 붕괴 🏚️
오랜 기간 이어진 보수당 정부의 긴축 재정 정책으로 인해 공공복지 시스템이 약화되었습니다.
푸드뱅크 의존도 급증: 국가의 복지 혜택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자선 단체가 운영하는 푸드뱅크를 찾는 중산층과 직장인들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근로 빈곤층(Working Poor)'이 늘어난 것입니다.
아동 빈곤의 심화: 유니세프와 각종 NGO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아동의 상당수가 영양 결핍 위기에 놓여 있으며, 이는 아이들의 신체 발달뿐만 아니라 학업 성취도 저하로 이어져 빈곤의 대물림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A)
Q1. 영국은 선진국인데 정말 굶는 아이들이 많나요?
👉 A. 네,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영국 아동 4명 중 1명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 놓여 있으며,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식량 불안(Food Insecurity)을 겪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주머니를 털어 간식을 사주는 일이 뉴스에 자주 보도될 정도입니다.
Q2. 정부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나요?
👉 A. 영국 정부도 에너지 요금 보조, 생활비 지원금 지급, 최저임금 인상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가 상승 속도가 워낙 빨라 이러한 지원책이 실질적인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무료 급식 확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Q3. 왜 다른 유럽 국가보다 영국이 더 심각한가요?
👉 A. '브렉시트'라는 고유한 악재가 겹쳤기 때문입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지만, 영국은 EU 탈퇴로 인한 무역 장벽, 노동력 부족, 투자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경제 성장률은 낮고 물가 상승률은 높은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더 깊이 빠져 있습니다.
Q4. 푸드뱅크(Food Bank)란 무엇인가요?
👉 A. 기부받은 식료품을 생활이 어려운 이웃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자선 단체 시설입니다. 과거에는 주로 노숙인이나 극빈층이 이용했으나, 최근 영국에서는 간호사, 교사, 소방관 등 직업이 있는 사람들조차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푸드뱅크 앞에 줄을 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Q5.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 A.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렵습니다. 브렉시트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어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또한, 영국 내부적으로는 부의 재분배와 복지 시스템 재건을 위한 정치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댓글
댓글 쓰기